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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청암 송건호 > 송건호 평전
 
 
 
 

 

 
 
 

오늘날 송건호라는 이름 석 자는 언론인의 표상이자 자유언론의 상징이 되었다. 그는 형극과 수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한 시대의 언론정신과 역사정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일평생 헌신하고 정진한 참다운 언론인이었다. 광복과 분단, 근대화와 민주화로 숨 가쁘게 전개되던 격동의 20세기 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하며, 그가 정권의 탄압과 회유 속에서도 지키고자 했던 ‘민주언론·민족언론·독립언론’의 사상과 실천은 오늘 이 시대에도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사회의 진실보도라는 언론의 사명은 시대와 관계없이 막중한 까닭이다.

서거 7주기에 즈음하여 출간된 『나는 역사의 길을 걷고 싶다』는 바로 이런 송건호의 실천적 삶을 조명하고 있다. 이 책을 쓴 소설가 정지아는 송건호가 남긴 많은 글들과 저술, 일기와 메모 등을 바탕으로 그가 생각하고 실천하고 행동한 것이 무엇인지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또한 가족과 친지, 그를 기억하는 각계 사람들을 취재하여 얻은 풍부한 일화로 인간적인 풍모를 두루 살피고 있다.

“인내와 노력,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이 세상에서 못할 일이 없다. 인내야말로 환희에 이르는 길이다.” 기자수첩의 맨 첫 장에 언제나 안중근의 유훈을 적어 마음에 새겼던 송건호. 그는 이런 성실성으로 한발한발 자기 삶을 개척했고, 그런 인생의 자세가 ‘현실의 길’이 아닌 ‘역사의 길’을 걸었던 사람으로 평가받게 했다. 그는 언론인으로서 진실과 논리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먼저 인간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또 글과 삶이 일치해야 하며 수십 년 뒤에 보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후배들에게는 기자직을 권력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이용하지 말 것을 당부했고, 그 자신 또한 가장 경계해야 할 원칙으로 삼았다. 그 결과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이름을 남김으로써 이 땅의 많은 언론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송건호가 독재정권 시절 몇 차례나 정권의 부름을 받았던 일화는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알고 있다. 1975년 그는 동아일보·동아방송의 언론인들이 펼치던 자유언론운동에 동조하여 동아일보사를 스스로 그만두었는데, 그때는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이 한창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부와 명예를 약속하는 독재정권의 유혹이 달지 않았을 리 없다. 한때는 목숨과 청춘을 걸고 자유와 정의를 위해 나섰던 사람들이 그 유혹에 얼마나 많이 넘어갔던가. 뜻을 꺾은 이유가 무엇이든 개인의 입장에서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1970년대에는 민족의 앞날을 위한다며 유신의 기치를 높이 치켜세운 사람도 있었고, 80년대 초에는 그게 대세라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내세우는 사람도 있었다. 정의를 외피 삼아 당당했던 사람들일수록 변절도 쉽고 변절에 따른 구구한 변명도 많았다.

청암 송건호는 한 번도 ‘투사’임을 자처한 적이 없다. 송건호를 잘 아는 지인들은 그를 투사라 말하지 않는다. 고난의 세월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기나긴 독재정권이 막을 내린 뒤 그는 아름답고 고결한 투사로 남았다. 단순히 고난의 세월 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사람마다 그 고난의 세월을 보내는 마음도 자세도 달랐다. 송건호의 올곧은 인생을 고난의 세월 덕이라는 한 마디로 쉽게 치부할 수는 없다. 고난의 세월과 더불어 무엇이 한 인간을 살아서도 죽어서도 언론인이고자 하게 했을까.
 
 
 

 

 
 

송건호에게는 언론 이전에 민족이 있었다. 그에게 민족은 생애의 깃발이었다. 해방 전후의 인물을 평가할 때도 민족을 그 기준으로 삼았다. 송건호는 인간과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역사적인 삶이 참된 사람의 길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가치라고 믿었다. 그것은 곧 민족을 주체로 하는 가치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20대 청년으로 해방 후의 격동기를 맞았다. 당시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그랬듯 민족의 독립과 독립된 민족의 행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청년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분단된 남한에서 그는 언론인이 되었다. 언론인으로서 그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민족이었다.

한때는 강대국의 식민지였고, 강대국의 힘에 의해 해방이 되었으나 또다시 냉전논리에 휘말려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보면서 송건호는 마침내 ‘민족언론’에 눈뜨게 된다. 그가 말하는 민족언론이란 첫째, 서구 선진자본주의국가가 내세우는 객관주의 언론을 벗어나 새로운 주체적 언론질서를 확립하는 것, 둘째, 식민종주국의 낡은 언론체제를 벗어나서 원주민의 주체적인 언론질서를 확립하는 것, 셋째, 민주주의 훈련이 부족한 신생국에서 통치자의 독재화와 그들의 정권안보를 위한 봉사기관으로 전락한 언론을 민주주의를 위한 자유언론·독립언론으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송건호의 민족언론은 언론을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독재정권과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언론사를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동아일보 편집국장직을 사임한 후에도 여전히 언론인이었다. 그는 언론인의 자세로 무수한 자료더미를 뒤지면서 묻혀 있던 우리의 현대사를 새롭게 발견해냈다. 독재정권의 끊임없는 억압과 회유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가려진 ‘진실’을 찾고 널리 알린 것이다. 그것이 송건호가 생각한 언론의 역할이었다.

송건호에게 1970년대와 80년대는 공포요, 악몽이요, 매순간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민족을 위해 ‘역사적 진실’을 버릴 수 없었고, 그 때문에 독재정권의 탄압과 회유와 싸워야 했으며, 자식들을 편히 살게 하고 싶다는 아버지로서의 당연한 욕망과도 싸워야 했다. 송건호의 아름다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아름다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그러해야 했을,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지 못했던 우리 시대의 비극과 아픔 속에서 빚어진 것이고, 그로 인해 더욱 값지다.
 
 
   

 
 
 
 

맑은 물은 가릴 것도 감출 것도 없어 제 속을 투명하게 드러내 보입니다. 투명한 물은 좀처럼 그 깊이를 알 수 없습니다. 청암 송건호 선생이 꼭 그런 분입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이 판을 치던 시절, 누구나 거침없이 권력을 즐기고, 그 권력을 얻기 위해 양심조차 기꺼이 내던질 때 송건호 선생은 설렁탕집의 사이다 서비스조차 특권이라며 누리길 거부했고, 정권의 부름을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그만큼 곧고 담대하였으나, 잘 모르는 이의 주례 부탁조차 거절하지 못할 만큼 여리기도 하였습니다. 고관대작의 유혹을 뿌리칠 때의 패기와 달리 끼니 걱정에 밤잠을 설치는 성실한 생활인이기도 하였습니다.

세상에 홑겹의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몇 가지의 얼굴을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청암 송건호 선생은 홑겹인 듯 맑고 투명하면서도 다양한 결을 지닌 분입니다. 성실한 생활인인가 하면 많은 이가 변절할 수밖에 없던 힘든 시절에도 마지막까지 자유언론의 기치를 내리지 않은 올곧은 투사이며, 소심한가 싶으면 어지간한 사람도 해내지 못할 일을 기어이 해내고 마는 배짱의 사나이였습니다. 여린 듯 강한 듯, 송건호 선생은 단 한 번도 휘어지지 않고 양심을 지키며 역사의 길을 고수했습니다.

선생이 살았던 시대에도 그러긴 했으나 오늘날에는 더욱이나 양심의 값을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출세와 명예가 따르지 않아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양심을 지키며 제 갈 길 가는 사람은 아직도 얼마든지 있고, 그런 자들이 정수기처럼 세상의 오물을 정화시키고 있기에 여전히 세상은 살 만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송건호 선생님을 뵌 적이 없습니다. 세상살이가 답답할 때 뵌 적도 없는 선생이 그립습니다. 글을 쓰면서 그이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습니다.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그 유명한 설렁탕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었을 텐데요. 살면서 자주 선생님이 그리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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